
“미리 말하는 걸 깜빡했는데, 이건 내가 최고의 히어로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 미도리야 이즈쿠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의 주인공 미도리야가 에피소드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며 던지는 이 대사를 빌려 제목을 만들었다(아직 안봤다면 보는걸 강력추천). 어쩌면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보안씬에서 일하는 한국인인 우리가 글로벌 씬에서 최고가 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왜 한국인을 원할까?
한국의 경제적 위상과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수많은 외국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서 영리 활동을 시작 있다. 최근에는 RevenueCat(레비뉴캣)이나 OpenAI 등등 굵직한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앞다투어 한국인 인재를 채용하려는 움직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왜 본사의 뛰어난 인력들을 두고 굳이 한국인을 찾을까?

엔지니어적인 발상으로만 접근하면 압도적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면 세상 어디서든 알아서 잘 쓰일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실제로 IDA나 Burp Suite처럼 타겟층이 명확한 테크니컬한 툴들은 가능하다. 왜냐면 엔드 유저가 핸즈온 가능한 엔지니어이기에, 어떻게든 제품을 뜯어보고 스스로 학습해서 잘 쓰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란 종족은 그러한 사람들이기 때문. 하지만 SaaS 제품들 그렇지 않다.
살아있는 생명체 그리고 Customer Success
SaaS 제품의 변화 주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며, 사용법은 대부분 단순하지만 정말 잘 쓰려면 마냥 단순하지만은 않다(이게 무슨말인가 싶지만 정말 그러하다). 무엇보다 엔드 유저가 엔지니어가 아니거나 다른 툴들까지 동시에 운영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소프트웨어가 완성품을 잘 만들어서 고객에게 던져주면 끝인 비즈니스였다면, 지금의 SaaS제품들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배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단순히 기능의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 고객이 우리 제품을 통해 실제로 가치를 창출하고(돈을 벌거나 비용을 아끼며) 비즈니스적인 성공을 거두도록 이끄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바로 최근 글로벌 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Customer Success의 관점이다.
고객이 제품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 도입 과정에서 겪는 페인포인트는 없는지, 매주 쏟아지는 신규 기능들을 인지하고 비즈니스에 녹여내고 있는지 끊임없이 파악해야 한다.
과연 시차가 10시간 이상 나고, 문화와 언어가 전혀 다른 본사의 인력이 이 섬세한 과정을 매끄럽게 수행할 수 있을까? 특히 우리가 말하는 눈치라는 개념도 없는 자들이 이걸 할 수 있을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 고객 특유의 비즈니스 환경과 기술적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들의 성공을 밀착 마크하며 이끌어 줄 한국인 Customer Success 매니저, 필드 엔지니어, 세일즈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타국 회사를 위한 일이 국가에 도움이 될까?
외국 회사에 다니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부분인거 같다. 한국인으로서 외국 회사를 위해 일하고, 그들의 제품을 한국 시장에 들여와 타국 기업의 이윤 창출에 기여하는 행위가 나 개인의 커리어를 넘어 내 친구, 가족, 그리고 우리나라에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차원적으로만 본다면 국가 인재를 해외에 유출해서 남의 배만 불려주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상황을 역이용해 무엇을 얻어내고 우리에게 돌려줄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냉정하게 말해, 글로벌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이나 비즈니스 씬에서 한국이 아직 세계 최고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하지만 삼성폰 엘지가전 메모리 최고 짱짱). 그렇기에 글로벌 최전선에서 뛰며 미국의 선진적인 제품 개발 방식, 엄청난 속도의 릴리즈와 딜리버리 노하우, 그리고 고객 성공을 이끌어내는 프로세스를 몸소 겪고 체화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글로벌 탑티어 회사들의 방식을 내부에서 배우고 경험하는 것만큼 확실한 성장은 없다. 외국 회사에서 일하며 얻은 이 귀중한 정보와 인사이트들을 차곡차곡 쌓아, 훗날 한국의 소프트웨어와 기술 생태계가 세계 최고가 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어떨까. 결과적으로 이 모든 과정은 한국을 위한,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위한 가장 강력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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